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에스토니아 관계 (문단 편집) === 근세 === 16세기 [[루스 차르국]] 군대가 오늘날의 [[타르투]]를 중심으로 한 도르파트 주교령 측에 4만 탈러에 달하는 조공금을 요구하고, 이를 납부하지 못하자 도르파트 주교령을 침공하였다. 도르파트 주교령은 루스 차르국의 침공으로 해체되었다. 리보니아 전쟁이 루스 차르국의 패전으로 끝나면서 결국 리투아니아 대공국 측이 영토를 수복하기는 했으나, 에스토니아 지역의 독일인들 상당수가 종교개혁을 거치며 [[루터교회]]로 갈아탄 마당에, 따로 가톨릭 주교령을 유지하기는 애매했고, 결국 타르투 일대는 리보니아 공국 내 "도르파트 주"라는 이름으로 통폐합되었다. [[에리크 14세]]의 즉위로 [[스웨덴]]은 오늘날 에스토니아 북부에 해당하는 [[에스토니아 공국#s-2]]을 점령했다. 당시 스웨덴은 농노제가 약했던 나라였으나 에리크 14세가 에스토니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현지의 [[발트 독일인]]에게 막대한 특권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에스토니아인은 이전과 같은 농노 취급을 당하며 차별받았다. 17세기에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탄압받던 고의식파 신자 수천여 명이 [[루스 차르국]]의 박해를 피해 [[페이푸스 호]]를 넘어 에스토니아에 정착했다. [[절대왕정]]을 추구한 [[칼 11세]]는 토지 환수 정책을 강화하고 발트 독일인의 기득권을 약화시키기 시작했고 그동안 억압당했던 에스토니아인의 처우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스웨덴 통치 시기의 기억은 시대가 지나 계속 이어지면서 에스토니아인에게 반독 감정 뿐만 아니라 반러 감정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